[장애] 장애인 당사자주의의 비판적 이해를 위하여 (김도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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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2012). 장애인 당사자주의의 비판적 이해를 위하여. 진보평론, 52, 172-190.

발제자: 🌊물모 (2020.05.02.) 

  1. 논의를 시작하며

  • 정치적인 의미에서 당사자주의란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누군가(전문가)의 대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스스로의 권익을 지켜내는 것임.
  • 일본에서는 일찍이 당사자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서구에서는 이에 정확히 대응하는 개념어는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미국의 자립생활운동가인 제임스 찰턴(James I. Charlton)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Nothing about Us without Us(우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하지 말라)라는 슬로건에 당사자주의가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당사자주의는 자기대표권(right to self-representation), 자기결정권(right to self-determination)의 확장된 적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음.
  • 아래에서는 한국 장애인운동 내에서 이러한 당사자주의를 하나의 운동 이념으로 주장하고 있는 한국 국제장애인연맹(Disabled people’s International, DPI)가 당사자주의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당사자주의 관련 논쟁 및 비판을 검토하고, 당사자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정체성의 정치(politics of identify)’가 지닌 한계점을 ‘횡단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와의 대비하여 살펴 볼 것임.

 

  2. 당사자주의에 대한 그 주창자들의 기본적 설명

  • 당사자주의는 국제장애인연맹(DPI)의 출범과 깊은 관련성이 있음. 1980년 캐나다 위니펙에서 열린 국제재활협회(Rehabilitation International, RI) 세계 대회에 참석했던 세계 각국의 장애인들은 의도적으로 이사회의 과반 이상을 장애인 대표에게 할당할 것을 요구함. 그러나 의료 및 재활 전문가들의 조직인 RI는 당연히 이를 거부하였고, 이를 계기로 DPI를 창설함.
  • 이처럼 당사자주의는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 스스로 대변해야 한다는 자기대표권의 원칙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음.
  •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장애인 당사자주의의 정의는 “장애인의 정치적 연대를 통해 장애인을 억압하는 사회 환경과 서비스 공급체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비판・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구너한과 선택 및 평가가 중시되는 장애인복지를 추구하며, 그 결과 장애인의 권리, 통합과 독립, 그리고 자조와 자기결정을 달성하려는 장애인 당사자 주도의 발전된 권리운동”임.
  • 한국DPI는 ‘장애인 당사자주의 운동의 참여와 연대정신’이라는 글에서 당사자주의가 장애인운동의 이념임을 명확히 한 뒤, “당사자와 당사자주의는 다르다. 당사자라고 해서 당사자주의를 지향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당사자 단체라 해서 당사자주의를 지향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힘.
  • 한편, 대구DIP는 장애인운동을 ‘비장애인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1) 비장애인 세계에 포섭된 장애인운동, 2) 비장애인 세계와 연대를 중시하는 장애인운동, 3) 비장애인 세계와 긴장을 중시하는 장애인운동’ 으로 분류함.
  • 그러나, 한국DPI의 이러한 기준은 타당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헤게모니를 확대하며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정부에 온건한 태도를 취하고, 서비스제공대상에서 지적장애인 및 자폐성장애인을 배제하려는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며 ‘편향된 당사자주의’를 드러냄을 비판함.

 

  3. 영국 장애학 내에서의 당사자주의 논쟁

  • 영국에서 발간되는 국제적 장애학 저널인 ⌜Disability & Society⌟에서 1997년에 당사자주의 논쟁이 이루어짐. 이 논쟁은 비장애인인 드레이크(Robert F. Drake)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비장애’인과 장애운동⌟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 글은 기본적으로 장애학과 장애인운동 내에서 장애인의 중심성을 강하게 견지하면서, 연대자 내지 조력자로서 비장애인의 역할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라는 고민을 담고 있음.
  • 드레이크는 우리사회 전반이, 특히 전통적인 자선단체들이 실질적으로는 장애인들을 무력화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강탈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의료적 장애모델이 아닌 사회적 장애모델에 동의하는 비장애인이라면 당연히 장애인운동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자 할 것이라고 주장함.
  • 그런 비장애인들이 반드시 유의해야할 지점은 다음과 같음. 1)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신하여 발언하는 것은 부적절함. 2) 비장애인은 운동 내에서 어떠한 권력적 지위도 추구하지 말아야 함. 3) 비장애인이 직접적으로 장애인을 다루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음.
  • 장애인운동에 대한 비장애인과 비장애인 조직의 정당한 역할은 다음과 같음. 1) 사회와 사회의 정책 및 관행들이 장애를 만들어내는 양상을 연구와 조사를 통해 드러내는 활동, 2)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에게 자원 제공, 3)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로부터의 특정한 요청들에 응답하는 것
  • 이와 같은 드레이크의 주장은 장애인운동도 하나의 활동이라고 했을 때, 다양한 활동 영역에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불리함이 이 안에서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이 이를 민감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역할을 설정해야 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임.
  • 그러나 이 글에 대해 장애인인 브랜필드(Fran Branfield)는 강한 반론과 비판을 제기함. 브랜필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운동 간의 관계는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그 이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아무리 신실하고 동조적이더라도 그 위치에서 그러한 것이라고 주장함.
  • 이에 대해 더킷(Paul S. Duckett)이 브랜필드의 주장에 강한 우려를 표시하며,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설정과 억압은 단순하게 이분화할 수 없으며, 소수자 해방은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연대와 지지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함.
  • 덧붙여, 자신이 장애인인지 아닌지는 공개하지 않으며, 자신의 장애 여부가 이 글의 올바름을 판단하는 데 차이를 발생시키는지 물으며, 생물학적으로 장애인인지 아닌지가 장애와 관련된 주장과 실천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함.

 

  4. 일본에서 제기되었던 당사자주의 비판

  • 일본의 저명한 월간지 ⌜현대사상⌟ 1998년 2월호에서 토요타 마사히로는 ⌜당사자 환상론: 혹은 마이너리티 운동에 있어서 공동환상의 논리⌟ 글에서 당사자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함. 결론적으로 ‘당사자주의’가 사회적 소수자 운동에 있어서 공동환상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함.
  • 첫째, 마사히로는 당사자주의가 본직적으로 사회 전체 문제인 다양한 사회 이슈들(장애인, 재일한국인, 조선인, 외국인, 여성 ) 그들만의문제인 것처럼 인식하게끔 만드는 환상을 만듦. 이는 장애문제가 장애인들만이 당사자이며, 나머지 구성원들은 무관하다는 뜻임. 따라서 장애문제와 무관한 비장애인들은 당연히 장애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됨.
  • 둘째,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당사자 집단으로서 장애인을 상정하게 되면, 이중적인 모순에 빠지게 . 어떤 문제의 당사자를 표면적으로 관계된 일부 주체들로 한정한다면, 그러한 논리는 더 하위의 당사자 집단을 생산해 냄. 장애인 내에서도 장애유형, 성별, 계급, 학력, 성적 지향, 출신 지역, 연령에 따라 장애인들이 갖는 경험과 위치는 모두 다름. 이것은 개인들이 지닌 차이와 견해를 무시하거나 배제하여 집단적인 사회적 실천을 불가능하게 함.
  • 셋째, 일본의 장애인운동이 60-70년대에는 ‘장애인해방’이라는 이념과 지향을 가진 운동이었다면, 지금은 당사자운동이라는 논리 하에 배타적 권위주의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함. 이는 결국 무이념, 무지향의 운동을 포장하기 위한 논리임.

 

  5. 정체성의 정치가 지닌 한계: 횡단의 정치, 되기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 당사자주의는 흔히 이야기하는 ‘정치성의 정치’에 그 기반을 두고 있음. 즉, 비장애인과는 다른 장애인이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만이 장애문제를 가장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장애문제의 주체라는 것임.
  • 정체성의 정치는 표면적으로 ‘보편성의 정치’와 대립되며 ‘차이의 정치’에 기반을 두는 것처럼 보임. 그러나 본질적으로 정체성의 정치는 그러한 차이의 정치를 경유하여 보편성의 정치에 재포섭된 일종의 ‘하위 보편주의’에 기반을 둔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위 집단 구성원 내에서는 다시 일정한 공통성과 보편성을 상정하기 때문임.
  • 이스라엘 출신의 반체제 여성학자인 유발-데이비스(Nira Yuval-Davis)는 ⌜젠더와 민족⌟에서 이러한 보편성의 정치/정체성의 정치가 지닌 한계를 비판하며 ‘횡단의 정치’를 제안함. 횡단의 정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로지르며 공동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연대의 정치를 지향함.
  • 즉, ‘횡단의 정치’는 모든 개인들을 하나의 전체/ 정체성으로 단정하는 보편주의를 지양하고, 그러면서도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과 주도권을 주장하는 특수주의의 입장을 고집하지도 않으면서, 공통의 주제나 문제 앞에서 대화적 방법을 통해 함께 모인 주체들의 이익과 열망을 아우를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내는 정치라고 할 수 있음.
  • 기본적으로 횡단의 정치는 소위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주의/상대주의 이분법에 대한 대안을 목표로 함. 또한 계급, 성별, 장애, 학력, 성적 지향, 출신 지역, 연령 등의 무수히 많은 차이가 교차함에 따라 사람들이 모두 다르다면, 그러한 개인들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임.
  •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모든 정체성은 차이와 교차하며 구성된다”고 했을 때, 횡단의 정치는 페미니즘 정치나 장애의 정치와 같은 모든 소수자 대중운동 자체를 연합정치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고 사고하며, 우리가 ‘누구’인가가 아닌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측면에서, 안과 밖의 정치적 ‘단위’들이 이러한 연합의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함.
  • 횡단의 정치에서는 위치의 고정성보다는 대화가 세력을 갖춘 지식의 기초가됨. 집단 형성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은 본질주의적인 정체성의 차이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정치현실임. 따라서 대화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정채성 속에 ‘뿌리내리기(rooting)’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정체성을 지닌 주체들과 교류와 공감을 위해 ‘옮기기(shifting)’을 시도함. 이러한 형식의 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횡단주의(transveralism)’임.
  • 이러한 횡단의 정치는 자기중심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대화와 공감에 기반을 두고, 구체적인 정세에 따라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연합적) 단위의 유연한 재구성을 지향하는 것이 횡단의 정치이며, 이는 ‘되기의 정치(politics of becoming)’와도 상당한 친연성을 가짐.

 

  6. 결론을 대신하여: 당사자주의의 올바른 위상과 한국적 현실

  • 비록 정체성의 정치가 갖는 한계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형태로 발전되어야 하겠지만, 자기대표권이나 자기결정권의 확장된 적용으로서의 당사자주의란 장애인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대중운동에 있어 밑바탕이 되는 기본적 원리들 중 하나임. 따라서 장애인운동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청소년운동, 성적소수자운동 등 모든 대중운동 영역에서 대중들 스스로가 자기대표권을 갖는 것은 당연함.
  • 그러나 그 어떤 대중운동도 당사자주의를 운동의 이념으로 내세우지는 않음. 그것은 어떤 운동이 무엇을 하고자 하며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가를 드러내주는, 즉 지향과 내용을 담보하는 이념적 수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임.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DPI가 다른 대중운동들과 달리 장애인운동에서 당사자주의가 특별히 운동의 이념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장애인복지 전달체계와 공급자적 위치를 비장애인과 전문가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서비스 수요자인 장애인들의 복지가 실질적으로 증진되지 않았기 때문임.
  • 이러한 이유로 한국DPI가 말하는 정치세력화는 새누리당부터 통합진보당까지 좌우를 가리지 않으며, 복지전달체계를 장악하기 위하여 현실 권력과의 결합도 가능했음. 또한 복지전달체계를 탈환하여 복지부의 사업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대중투쟁이란 하나의 요식 행위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지적함.
  •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식의 운동전략과 정치세력화가 진정한 장애해방을, 장애해방을 위한 운동의 지속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지 비판하며 의문을 제기함.

 

  [이야기할 거리]

  • 복지전달체계 및 사회복지운동에서의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
  • 페미니즘운동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 당사자주의, 전문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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