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 사유하기 (전혜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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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은. (2018).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 사유하기. 인문과학, 113(0), 267-318.

발제자: 🌊물모 (2020.02.08.)

  

  Ⅰ. 들어가며

  •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한다는 것은, 첫째, 퀴어인 사람은 당연히 비장애인일 것이고 장애인은 당연히 시스젠더 이성애자일 것이라는 전제를 깨겠다는 것이며. 둘째, 퀴어와 장애를 서로 무관한 별개의 범주이거나 어느 한쪽에 쉽게 포함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척도로 잴 수 없는 차이를 품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로서 살펴보겠다는 것임. 마지막으로, 장애를 퀴어에, 퀴어를 장애에 통합시키는 동시에 서로의 관점을 통해 변환시키는 인식틀의 상호 대 격변을 꾀하는 구조로서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겠다는 것임.
  • 이 글에서는 퀴어와 장애를 반목시키는 주요인으로 ‘병리화’와 ‘정상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나머지 부분에서는 퀴어와 장애가 교차하는 사안 중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추어 정상성을 해체하는 논의를 탐구하고 있음.

 

  Ⅱ. 갈등과 연대: 병리화의 낙인과 정상성의 해체

  • 퀴어와 장애의 관계가 공통된 억압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낙인을 짊어지지 않기 위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있었음.
  • 첫째, 19-20세기 중반 유럽과 미국에서 성행했던 프릭 쇼(freak show). 인종 국적 성별 성차 섹슈얼리티 비장애 등에 대한 당대의 규범에 벗어나는 모든 차이를 인간이 아닌 괴물로 동물원, 서커스 등에서 전시하였음.
  • 둘째, 역사적으로 퀴어와 장애는 둘 다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감시와 통제를 받았음. 트랜스젠더의 경우,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서 2012년 정신장애에서 성별위화감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변경되기 전 DSM을 활용하여 정신장애로 진단하고 있다.
  • 셋째, 퀴어와 장애는 서로의 낙인을 피하느라 껄끄러운 관계를 맺게 된 주된 요인은 병리화의 낙인임. 주류 장애 운동의 남성 중심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경향으로 인해 퀴어이자 장애인인 사람들 및 퀴어 의제는 장애 정치에서 소외되어 왔음. 주류 성소수자 운동 또한 성소수자들의 특성이 ‘병’이 아니라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인간 다양성에 속함을 강조하며 장애 및 질환과 거리를 두어왔음.
  • 병리화의 낙인을 부수는 것이 장애와 퀴어의 생산적인 연대의 발판을 마련하는 첫 번째 과업이 될 것임.

 

     1. 퀴어와 장애의 갈등 : 병리화의 낙인

  • 병리화는 차이가 병으로 환원되는 것으로 정의됨. 이러한 정의는 병리화를 문제시하면서도 여전히 병을 나쁜 것과 등치시킴으로써 병 그리고 그 병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이러한 병리화는 의료화 (medicalization)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
  • 의료화의 문제점은 첫째, 거의 모든 일상의 영역이 건강과 질병의 문제로 환원된다는 것이며, 의료적 정의와 해석을 내릴 권한을 가진 의료 전문가들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지나치게 좌우함.
  • 둘째,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킴. 사회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질병과 문제를 개인의 불행과 결함으로 간주하여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우세함.
  • 셋째, 질병과 장애를 개인화하는 것은 건강을 좋은 것이자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건강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음. 건강의 문제는 도덕적인 가치판단의 문제가 되며 질병과 장애는 나쁘고 악한 것으로 간주됨.
  • 넷째, 장애 및 기타 소수자 특성의 의료화에서, 이들을 병리적인 문제로 규정하는 관점이 대중의 문화적 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주류집단과의 불평등한 상호관계를 구성함.
  • 병리화의 작동 방식 : 병리화는 정상성(normalcy)을 생산하고 강화하는 기제로, 다양한 생물학적 다양성을 정상/병리의 차등적인 위계질서로 만들고, 이러한 병리화가 그 자체로 피지배계층에 대한 통치방식으로 작동함. 병리화는 다양한 권력범주의 위계에서 밀려나는 소수자들의 공통된 억압을 상징하지만, 소수자들끼리에서도 ‘나만’ 병리화에서 벗어나자고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정상성 체계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함.
  • 병리화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연대를 방해하지만, 병리화의 낙인이 타자들에게 공통된 억압임을 인지할 때 역설적으로 병리화는 연대의 가능성과 방법을 모색할 출발점이 될 수 있음.

 

     2. 퀴어와 장애의 연대 : 정상성을 해체하기

  • 정상성에 주목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당연시되고 어쩔 수 없다고 간주되었던 것들이 사실상 강제적인 규범으로 구성된 것임을 드러낸다는 의미임. 페미니즘이 기울어진 운동장 자체를 문제시하듯, 퀴어 장애 정치는 인간, 인간의 몸, 정신, 사회관계 모두를 정의하고 해석하고 재현하는 방식에 특정한 몸, 정신, 인간만 ‘정상’으로 인정하고 외의 것들은 열등하고 일탈적이고 병리적인 것으로 배제하는 위계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음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함.
  • 정상성을 구축하는 강제적 체계들은 서로 긴밀히 공조함: 젠더 이원론, 건강중심주의
  • 국내 장애인복지, 장애인복지시설에서 강조하고 있는 정상화(normalization)은 생활리듬과 패턴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조하는 개념으로, 정상적인 발달 경험, 선택의 자유, 정상적인 이웃과 함께하는 정상적인 가정에서의 삶, 지역사회 통합 등의 삶을 강조함 (장애인복지론, 2016, 학지사).
  • 사례: 트랜스젠더, 젠더퀴어의 유방암 수술 후 유방재건수술 거부에 대한 의료진의 반응

 

  Ⅲ.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와 에이섹슈얼리티

     1. 장애인과 섹슈얼리티

          1) 장애인은 무성애자다?

    • 주류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성적인 존재로 쉽게 상상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적인 존재여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금지 명령이 깔려 있음. 전형적으로 장애인은 아이 같고,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재현되며 이러한 이미지는 장애인에게 강제됨. 따라서 장애인은 성폭력 당하는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성적인 ‘주체’는 될 수 없음.
    • 사례: 강제 불임 시술, 성폭력, 자발적인 성적 교류과 자위행동 금지, 애슐리 X 사건
    •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주류 담론은 매우 모순적임. 장애인은 성적으로 무지하거나 무성적인 존재로 재현되지만 동시에 과잉섹슈얼리티의 이미지로도 재현됨. 동성애자들은 무성애자보다는 과잉성욕자로 규정되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회가 ‘정상성애’로 규정한 이성애 규범적인 자격조건이나 삶의 양식을 벗어났기 때문임.
    • 이는 정상성의 자격 요건을 벗어난 특정 인구집단을 단속하는 프로세스임. 섹슈얼리티는 그 자체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아니라 누가 “진짜 인간”인지를 규정하고 제한하는 규범적인 강제로 작동한다는 것이 드러남.

 

          2) 만약 장애인이 유성애자라면 당연히 이성애자일 것이다?

    • 장애인의 섹슈얼리티가 그나마 인정될 때는, 역경을 딛고 장애인 간, 혹은 비장애인과의 이성애 결혼이 성사되는 모습으로 재현될 때임.
    • 장애인들은 이성애적 규범성을 좇는 순간조차에서도, 이성애 규범성에서 일탈하고 교란하는 효과를 낳기도 함. 예를 들어 이성애적 삽입성교가 규범으로 취해지는 사회에서는 삽입성교가 어려운 장애인의 상당수의 성적 실천이 병리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으로 취급 받음.
    • 또한 이성애 규범적 섹슈얼리티는 세대를 잇는 재생산을 핵심가치로 두기 때문에, 퀴어와 장애를 사회정치 영역의 철저한 외부로 상정함으로 이성에 규범성에 절대적인 특권을 부여함.

 

          3)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이성애자 남성의 관점에서만 잘 이해될 수 있다?

    • 장애인의 성폭력 피해와 성적 주체성이 언제 인정되는가의 문제는 매번 맥락없이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이 기득권을 쥔 가부장적 사회에 이득이 되는 방향을 따른다는 일관성이 있음.
    •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여성은 억압을 이중으로 부담하고 있으나, 장애여성이 겪는 부당한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재현한다면, 섹슈얼리티에 고민하고 이야기해볼 가능성조차 빼앗기게 됨. 이것이 지속되면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은 남성 규범성이 계속 독점하게 될 것임.
    • 엘리슨 케이퍼: 장애여성이 성과 관련될 때는 오로지 피해자로서뿐이고, 장애여성을 욕망하는 남성은 죄다 변태성욕자나 성범죄자라는 통념이 ‘장애여성은 성적으로 욕망할만하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지적함. 따라서 섹슈얼리티를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리고 장애 때문에 페티시즘적인 것이 아니라, 장애와의 관계 속에서 풍성하고 원기 왕성한 섹슈얼리티로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한다고 촉구함.
    • 장애여성과 퀴어들에게는 더 많은 대안적 선택지가 있어야 함. 억압의 경험과 욕망을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거기에 깔린 수치심과 욕망, 혐오와 위협이 뒤얽힌 불확실성과 양가감정을 함께 나눠야 함.

 

     2. 장애인과 에이섹슈얼리티

    • 무성애자 장애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삼중고를 겪음. 첫째, 주류사회는 무성적인 것을 장애인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당연시함. 성적 존재로서의 가능성과 자격을 부인당하는 것이 이들의 결핍과 결함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서 장애에 귀속시키는 장치로 작동함.
    • 둘째, 장애인을 무성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지배 담론에 맞서기 위해 장애 공동체 및 장애운동은 장애인도 성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감.
    • 셋째, 미국은 물론, 한국의 무성애자 단체 또한 비장애인이 주류이고, 따라서 자신들이 ‘정상’임을 강조하기 위해 무성애자인 장애인과 거리를 둠.
    • 무성애자 장애인들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내지만 에이섹슈얼리티를 부정하는 섹슈얼리티의 편협한 담론 틀에 구속되어버림.
    • 무성애자 정체성과 유성애자 정체성은 변할 수 있으며, 정체성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진정성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유성애/무성애를 비롯하여 남/여, 이성애/동성애 등 우리의 성적 영역을 직조하는 수많은 이분법에 딱 들어맞지 않는 몸과 삶이 존재한다는 뜻임.

 

  Ⅳ. 나가며

  • 장애와 퀴어는 별개의 범주가 아니라 항상 치열하고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음.
  • 이 사회에서 ‘정상’을 규정하는 요소들은 다방면에서 매우 다양하고 촘촘하게 규정되고 규제되고 있기때문에 정상성에 맞서는 싸움은 어느 하나의 위치성에서 완벽히 대응할 수 없음. 따라서 이 복잡한 교차를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고 체험하고 재현하고 이론화 할 것인지인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개입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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